생각 정리 Pour Mon Papillon

#1 꿀벅지 논란
  한동안 네티즌들이 '꿀벅지'라는 단어를 도마 위에 올리고 채를 썰었던 것 같다. 물론 그동안 난 철저히 논란의 밖에 서 있었다. 워낙 인터넷 상에서 사용되는 통신어랑 거리가 멀다보니, 그리고 tv와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제외하고는 거의 인연이 없다보니(우리 집 TV는 뭐 거의 장식용이다.) 꿀벅지라는 단어를 들어본 시기 자체도 꿀벅지 논란이 거의 끝나가던 때였다. 처음 나에게 꿀벅지 얘기를 해 준 친구는 '꿀벅지가 뭐야?'라는 나의 질문에 '꿀을 발라놓은 듯 미끈하고 달콤한 허벅지'라는 뜻이라고 얘기해주면서 이건 여성비하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발끈했다. 말 그대로 발끈...!  그리고 그 후로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꿀벅지라는 말에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진술했고, (또다시)대부분의 경우에는 '모욕적'이라는 단어 앞에 '굉장히', 혹은 '정말로'와 같은 수식어구가 따라붙었으며, 사회적으로 볼 때 거칠다고 판단될만한 어구들이(짧게 말하면 욕...?!) 후치수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성'이라는 집단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 말은 분명 모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모욕적이라고 발끈하기 전에 미디어가(대중 매체라는 본연의 뜻보다는 대중이란 뜻에 더 가까운 미디어)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먼저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여성의 성이 '판매'(내가 하고 싶은 말의 미묘한 의미를 살려줄 수 있는 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는 누가 만들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글쎄, '꿀벅지'라는 신조어를 모욕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여성 단체의 담론은 확실히 제 색을 잃는다. 물론 나는 꿀벅지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사실 자기 허벅지가 꿀벅지가 아닌 여성 '개인'의 입장에서 꿀벅지는 그닥 모욕적인 단어는 아니다. 그저 딴 동네 일일 뿐이다.

* 덧 : 근데 유이가 누구지-_-?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꿀벅지 논란은 유이라는 사람한테서 시작되었다는데, 정작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2 나영이 사건
  얼마 전, 한 명의 개인이 사람들이 '죽일 놈'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뭐,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봐도 완전 못된 놈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 '죽일 놈'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동의할 순 없지만 관용적인 표현대로라면, 죽일 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작년 겨울, 나영이라는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뒷처리'를 무시무시하게 했다는데, 그 뒷처리의 내용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라 이야기를 듣고 경악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징역 12년이라는 형벌이 내려졌다. 네티즌들은 그 나영이라는 여자아이가 자신의 딸이나 동생이나 되는 양 가해자의 잔악한 행위에 분노했고, 그런 사람에게 겨우 징역 12년의 형벌이 선고도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우리 나라의 사법체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성폭력범에게 유달리 관대하다.(징역 15년 이하, 미성년자일 경우 가중처벌) 다른 어느 범죄가 안 그렇겠냐마는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평생을 지속될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_적어도 내 상식 선에서는)더 무거운 형벌을 부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법 체계는 제 2의 범죄의 가능성을 항상 남겨둔다. 통계상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높다던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아,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나영이 사건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플라톤과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미 인정했다시피, 그리고 롤랑 바르트가 에세이 'Qu'est-ce que la critique'에서 언급했다시피 언어의 본질은 verite, 그러니까 사실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validite, 정당성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말로 전해진 정보는 참, 거짓의 여부를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가해자가 8살 짜리 여자아이에게 가했다는 해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단언하기 전에 충분한 숙고를 거치고 싶다.

#3 우측통행
  지하철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A4 용지 한 장에, 엄밀히 말하면 거기에 쓰인 문구에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역을 이용하시는 고객님들은 우측통행의 달인이십니다." 어쩌라구요. 요즘 대한민국은 우측통행 캠페인이 한창 진행중이다.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 포스터 옆에는 우측통행을 촉구하는 선전 포스터가 나란히 붙었으며, 전철 내에 붙어있는 포스터에서도, 전철 차장의 방송에서도 전철을 이용해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혹은 등하교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에도 여러 번 씩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측통행을 '강제'하는 목소리에 노출된다.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무작정 섞여서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쁘지만, 그리고 나 역시도 보통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대로 왼쪽으로 걸어가지만 그래도 '**역을 이용하시는 고객님들은 우측통행의 달인이십니다.'라는 포스터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그러더니 심지어는 영등포구청역의 에스컬레이터 방향마저 바뀌어있었다. 저번 금요일, 퇴근하시는 아빠 차나 얻어탈겸 오래간만에 영등포구청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는데, 웁스...!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왼쪽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평소 위로 올라가던 두 개의 에스컬레이터 중 한 라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쩐시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올라오더라니...)

  초등학교 때 복도에는 항상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좌측통행을 하지 않으면 애들을 불러다가 벌을 주는 선생님도 계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주변은 '좌측통행'을 가리키는 정보들로 넘쳐났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왼쪽에 붙어있는 화살표 모양의 스티커를 따라 걷다보니, 고등학교 쯤 가자 좌측통행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두 곳과 중학교 두 곳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듯,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학생들이나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의 줄은 언제나 이동방향 기준 왼쪽 복도 벽에 착 붙어있었다.

  나는 갑자기 사람들이 우측통행 캠페인을 진행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우측통행을 요구하는 포스터에는 언제나 우측통행을 해야한다는 명제만이 담겨있었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담론은 어느 곳에도 담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무심코 왼쪽으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 오른쪽으로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는 어떠한 납득할 만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러라고 요구하니까,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저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결정해서 통보했기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유지해왔던 행위의 지속성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내일 FLI 수업의 주제는 대중의 양산이다. 딱히 준비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할 말은 참 많은 날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르쿠제의 지적, 스포츠경기, 국가의 입장, 광고, 캠페인... 대중에게 순응적이지 않은 개인이 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대중 속에 살고 있는 대중이다.

#4 소비
  위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소비 위주의 대중 문화는 아직도 가끔씩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인터넷을 사용하긴 하지만 내멋대로 사용하는 인터넷 소비자이고, 음악은 한국의 대중음악과는 거리가 먼 가사 없는 음악이나 프랑스어로 된 노래를 주로 듣는 음악 소비자이고, TV는 가끔씩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해주는 다큐멘터리나 보고, 가끔씩 밥 먹으면서 뉴스 보다가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텔레비전 방송 소비자이고,  라디오는 버스에 타서나 가끔 듣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그냥 이어폰을 꽂아버리는 라디오 방송 소비자인지라 요즘 한국에서 인기있는 노래가 뭔지도 잘 모르고, 뮤직비디오가 어떤지는 더더욱 모른다. 본 적이 있어야지...-_-! 근데 어제 엄마랑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브아걸(얘네 원래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다. 분명 입학식 전에 있었던 전체 OT에 왔던 그룹인 것 같긴 한데, 외우기엔 이름이 너무 길었다.)이 부른 '아브라카다브라'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충격....! 이건 좀 심하게 선정적인데-_-? 물론 우리 집안 분위기가 워낙 보수적인지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초등학생들도 보는 뮤직비디오치곤 확실히 수위가 높아보였다. 음악에 대한 선호야 워낙에 개인적 취향에 속하는 문제이니 언급하지 않겠지만 브아걸의 뮤직비디오는 소비를 지향하는 대중 문화의 경향에 너무 잘 부합하고 있었다. 충격적일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가치는 경제성에 의해 결정된다. 심지어 '경제적인가, 경제적이지 않은가'의 질문은 미적 판단 기준, 혹은 윤리적 판단의 기준과 동일시되기까지 한다. 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를 비판할 역량이 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나는 결코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독단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는 것에는 반대한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경제적 가치로 귀결시킬 수만은 없는 '금단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적어도 나에게, 예술은 그 금단의 영역에 속한다. 예술이 대중을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자본의 논리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예술과 철학만큼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쓰나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으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대중이다.

#5 군 가산점 제도
  이상하게 군 가산점 제도 얘기만 나오면 여성 집단은 여성 집단대로 열폭하고, 남성 집단은 남성 집단대로 열폭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두 집단의 주장은 놀라울만큼 이율배반적이다. 마치 절대로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하지만 정당한 범위 내에서라면 군 가산점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글

  • ichbinnina 2009/10/16 15:10 # 삭제 답글

    re. #1- 난 그 꿀벅지에 대한 그 유이란 작자의 대응이 더 열받았어. 기자가 꿀벅지란 단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깐 대답이, 자기에게 관심가져서 줘서 좋다나 뭐라나. 이건 뭐 내 주소비층은 여자 다리보고 침 질질 흘리는 늑대남성들이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내가 이익을 얻으니 상관없다란 뭐 이런 자세.. 정말 그여자 데리고 가서 차근차근 자기 몸의 소중함에 대해서 알켜주고 싶더라고 뭐 이런 ;......
    p.s. 자본주의가 얼마나 강하고 극도로 발전했나를 보여주는 건 역시 연예 사업이라고 생각해. 그곳이야말로 진짜 인간의 상품화가 왕성하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이루어지는 곳이짆아.

    -re #3. 우측통행보는데 좀 슬프라구,. 우측통행을 요구하는 이유가 글로벌 스탠다드 (내원참 그냥 국제적 기준이라고 쓰지 그걸 또 뭐 영어로 쓰겠다고 아등바등인지... 이러다가 바나나 100g 얼마 대신에 버내너 100g 얼마로 쓰겠어 아주.. ) 이 잖아. 글로벌 스탠다드가 뭐야 ,말그대로 모방 하겠다는 거 아니야. 우리나라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모방이고 빨리 빨리인데,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한 지금도 아직까지 모방하자가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서 슬퍼

    re#2. ......... 그냥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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