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이야기_Aimer, 그리고 사랑의 단상 Contemplations(culture)

  흔히들 프랑스 3대 뮤지컬이라고 말하는 Roméo et Juliette, Les Dix Commandements, Notre-Dame de Paris 중에서도 Roméo et Juliette은 이미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이 이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한국어로 번안된 한국어판 공연까지 앵콜 공연을 시작할 만큼 반응이 좋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좋아라 하는 Roméo et Juliette에서도 sommet를 찍는 곡은 단연 Aimer.(*) 한 4년 째 Roméo et Juliette을 무한반복재생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일 것도 없지만 그래도 Aimer는 언제 들어도 썩 괜찮은 노래이다.

  프랑스 오리지널 팀 공연에서건, 한국어 공연에서건(**) Aimer(혹은 '사랑한다는 것')라는 노래는 제목에 충실하게,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노래한다.(문장을 써놓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웃기지만, 머리 아프니까 패스) Aimer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의 개념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추상적인 만큼 굉장히 추상적이며 '사랑'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묘사한다. 새의 날개까지 날아오르는 것이고, 화산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것이며, 삶에 일정한 방향성을 지시해주는 것이고, Blah Blah Blah...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게 흘러가는 가사를 들으면서 며칠 전 수업시간에 다뤘던 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에 있어서, 1+1=1이 옳을까, 1+1=3이 옳을까?'

  흥, 나는 받은 건 갚아주는 사람이다. Coulon씨가 짖궂은 질문을 던졌으니 짖궂은 답을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다. 보기를 두 개만 줬길래 '1+1=∞' 이라고 대답해줬다.(수학을 놓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문과생은 이런 거 써 놓고도 맞게 쓴건지 불안해서 꼭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조목조목 설명하기. 아우, 불어로 설명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l'amour platonique 차원에서 사랑은 1+1=1에서 1+1=로 이어진다. 한 방울의 물방울에 다른 한 방울이 더해지면 물방울은 더 커다란 하나의 물방울이 되지만 그 물방울이 모이고 모이면 대양을 이루듯 모든 생명에 대한 개인의 사랑도 처음에는 단 한 방울의 물방울에서 시작하지만 사랑의 범주에 생명을 하나씩 담아나가면서 거대한 생명의 물결이 되어 넘실거린다. 1에서 시작해서 까지, l'amour platonique는 를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 속에 이미 그 자신을 담고 있다.

  l'amour erotique의 차원에서의 사랑은 1+1=1인 동시에 1+1=3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명의 사랑의 주체가(****) 만나 하나의 공통된 영역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1+1=1의 수식은 분명 참이지만 두 명을 모두 담아내는 '무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개의 jardin secret가 있기에 1+1은 동시에 3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Coulon씨는 만일 사랑의 대상(이것도 말이 웃긴데...?;;)과 공유하지 않는 비밀이 있다면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뭐라고 반박할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jardin commun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각자의 jardin secret를 소중히 여겨주고, 오히려 서로의 jardin을 지켜줄 때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무조건적으로 1+1=1을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 '소유'의 의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Aimer는 분명 사랑을 정의하고 있지만 Aimer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저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일 뿐이다. 관습에 의해 의미를 획득하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사랑의 감정은 왜곡되고, 변질되고 만다.(*****) Aimer에서 노래하는 'Aimer'가 진짜 'Aimer'일 수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mer는 '썩' 이상으로 괜찮은 노래이다. I like it.

* 개인적으로는 Le Balcon(뮤지컬이나 오페라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사랑의 고백'인 거다. 뮤지컬과 오페라의 원작이 되는 문학 작품에서도 원래 작가의 역량을 알고자 한다면 사랑의 고백 장면을 분석하면 된다고들 하지 않던가. P모 교수님의 말씀이 맨날 틀린 건 아닌 것 같다.)이나 Un Jour나 Par Amour 기타 등등 다른 노래를 훨씬 더 선호하지만 아무래도 타이틀곡 비슷하게 가는 곡이다보니 Les Rois du Monde와 더불어 가장 좋은 반응을 얻는 곡이다.

** 오늘 YouTube에서 굳이 한국어 공연을 찾아서 들어봤는데 듣다가 동생이랑 뒤집어졌다. 어쩜 노래 가사를 그렇게 직역을 해다 놓으실 수 있는 건지... 박자라도 좀 맞춰주시면 좋을텐데... 가사가 아주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 사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Coup de foudre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만나고 하루인가 이틀인가만에 결혼하는 건 '정상'의 범주에 넣기엔 아무래도 좀 그렇다. 암만 평생동안 사랑을 기다려왔다고 하지만 만난 지 이틀만에 결혼까지 해버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 동성애를 배제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나한테 동성애자냐고 물어보면 기분이 팍 상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 Camus의 소설 <l'Etranger>(이방인)에서 Meursault는 자기를 사랑하냐는 Marie의 질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단편적으로 읽었을 때 Meursault의 답변은 Marie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지만 사실 Meursault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언어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Marie를 '사랑'하기를 거부한다. Meursault의 감정은 인간의 언어에 대해 '이방인'인 셈이다. 요즘 <이방인>으로 수업하고 있어서 그런지 무슨 말만 나오면 <이방인>이 생각난다.


덧 : 이제 자야지...!

덧글

  • 오리 2009/11/07 00:19 # 삭제 답글

    예전엔 말이야 왜 그렇게 사랑에 관련된 노래나 시나 문학작품이 많은지 몰랐었는데 이젠 쵸큼 알 것 같아.

    사람들은 자기가 모른 것, 자기 손에 잡을 수 없는 것, 자기 세계 바깥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아.

    상상을 하자면 처음에 인류가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을 때 얼마나 두렵겠어. 혈연도 아닌 존재한테 완전히 홀려버린다는게 그리고 이를 위해서 희생하고 좋은 감정을 느낀다는게. 어떤 육체적인 욕망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가 까지.. 이런 이상한 감정이 너무나도 두렵고도 무서워서 이를 좀 이겨내보려고 인간은 그 감정에 혹은 그 현상에 "사랑"이란 이름을 부치게 된거야.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그 "사랑"이란 것을 좀 더 자기 것으로 자기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서 이것 저것 궁리를 하는 거지. 철학서를 쓰기도 하고 소설을 써서 구현하고 시를 쓰고 노래를 써서 친숙하게 만들기도, 이런 사랑 저런 사랑을 만들어 실험해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사랑사랑 아주사랑 타령을 하는 것은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모르고 그래서 두렵기 때문일 거야 .
  • sorstalansag_i 2009/11/07 16:33 #

    이건 문화 인류학이니...ㅋㅋ 사랑에 관한 테마 비평을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요즘 비평 시간에 약간 테마 비평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어서 그런지 왜 이렇게 또 그런 쪽에 끌리나 몰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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