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 n'ai rien à dire Pour Mon Papillon

#1
  채플 시간,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여러분의 삶은 하느님의 것 입니다." 물리학과 교수님 입에서 나오기에는 좀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뿐일까. 사실 중학교 물리야 그저 달달 외우면 되는 것이고 고등학교 물리야 선생님이 워낙 제물포이시기도 했지만 1학년 내내 뉴턴의 3법칙도 다 못 나갔던 터라 나는 '물리'가 도대체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지는 개미 눈꼽만큼도 모르지만 왠지 세상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현상들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어렴풋하게 들기 때문인지, 과학자의 입, 철학자의 입이 따로 있겠냐만서도 물리학 교수님이 신을 운운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째로 신에게서 찾는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느껴진다.(*)

  꼭 물리학 교수님이 하셔서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삶은 하느님의 것 입니다." 잠드는 순간에도 굉장히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1학년 때 들었던 기독교와 세계문화 교수님이 생각나서 일지도 모른다. 1학년 1학기, 대학 입학하고 나온 첫 과제는 였더랬다. '종교에 관한 자기 생각'을 써 오라고 해서 '무려' 2장인가 3장에 걸쳐 내가 종교를 가지고 싶지 않은 이유를 나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줄줄 써나갔는데(솔직하게 말하면 나름대로는 만족스러울 만큼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헐... 교수님의 코멘트 : "OOO 학생이 아무리 거부한다고 해도 하느님은 OOO 학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OOO 학생의 생명은 학생의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의 연결을 인정할 때 OOO 학생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Blah Blah Blah..." Hello? 이건 무슨 말씀? Are you kidding me? 이렇게 나오실 거면 도대체 종교에 관한 '자신의' 생각은 왜 써오라고 하신 건가요...?;; 수업시간에도 워낙 듣기 거북하신 말씀을 자주 하시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레포트에 코멘트를 달아버리시면 이건 말이 또 달라진다. 밥맛이 뚝 떨어지면서 손발이 오글거리고 기독교에 관한 거부감이 지수 함수 그래프를 그린달까? 나처럼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내 삶은 내 것인데 왜 내 허락도 없이 나의 것까지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돌려버리나요?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면, 하느님은 분명 무지 할 일이 없거나, 심심하거나, '삶'을 만드는 버튼을 잘못 조작하셨을 거다. 어쩌면 무시무시한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60억이 넘는 삶을 다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계신다면 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취향이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니 60억 개의 '삶'이 하느님의 삶이랑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육체에 담아서 그저 그렇게 사는 미니어쳐를 60억개 쯤 가지고 있으면 할 일도 생길 것이고, 심심하지도 않을 터이다. 60억개의 삶이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고민하는 건 컴퓨터 게임 속의 아바타가 '내가 진짜일까?'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우스운 생각일 터이니 보고 있으면 재미도 썩 괜찮겠지. 근데 I'm so sorry.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다. 남에게서 빌린 것 말고 '내 것'.

  난 정말로 신이 있는 지도 모르고 신이 정말로 60억개의 삶의 진짜 주인인 지도 모른다.(그리고 아직까지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저 교수님의 말씀대로, 그리고 당신의 하느님을 신봉하셨던 기세문 교수님의 말씀대로 나의 삶은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저 높이 있는 누군가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 앞에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이 삶은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조금씩 공유하고 있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세상이 그 근본에서부터 아무리 날 속일지라도, 나는 그저 그 '사기'에 풍덩 빠져서 속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기왕 속는다면 그 실제 소유관계에서도 좀 속으면 어떠한가.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다. 충실히 속고, 삶을 '나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만이 자꾸만 나로부터 흘러가려는 삶의 시간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인걸.

  Pascal 아저씨, 미안해요. 신이 존재한다고 내기를 걸어도 잃을 건 없는 것과 같은 논리로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든 데에 내기를 걸을래요. 신이 존재한다고 내기를 걸어버리면 영생의 삶을 하나 더 얻을지언정 현세에서의 삶이 불안정해지는 걸요. 대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기를 걸면 현세의 삶이 편해지지요. 그리고 만약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내기에서 졌다고 해도 영생에서의 삶은 주어질걸요?(***)

덧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네이트온 대화명은 아직도 Ne me trahis plus이다.

*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영역과 신의 영역은 별개의 것이라고 말하고, 또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실제로 과학의 마지막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논리가 아닌 '신'이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워낙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문과생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설명하고 represent하는 것은 철학자들이 해야할 일이고 과학자들의 일은 실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17세기 이전의 의미에서나 '과학적'일 수 있는 문과생에게 17세기 이후의 과학은 무조건 정합적이고 실제로 증명 가능한 '가시적'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이 느껴진다.

** 우리 조에 신학과 03학번인(무려 03이었다. 무려!)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도 '우리는 전공 수업 시간에 저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배워'라고 말씀하시면서 말 그대로 식겁하실 정도였다. 진짜 사이비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 Le juste est de ne point parier... Oui, mais il faut parier cela n'est pas volontaire, vous êtes embarqué. Lequel prendrez-vous donc? Peser le gain et le perte, en prenant croix que Dieu est. Estimons ces deux cas: si vous gagnez tout; si vous perdez, vous ne perdez rien. Gagez donc qu'il est sans hésiter. Cela est admirable si vous n'aviez qu'à gagner deux vies pour une vous pourriez encore gager.(정당한 것은 내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자의와는 다르게 내기를 해야만 한다면 당신은 이미 운명의 배를 탄 셈이다. 신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중에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신이 존재한다고 치고 두 경우의 손익을 따져보자 : 만일 당신이 이기면 당신은 모든 것을 얻는다. 만일 당신이 진다고 해도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내기를 걸라. 이건 꽤 괜찮은 제안이다; 하나 대신 두 개의 삶을 얻으면 또 다른 내기를 걸 수 있지 않겠는가.) (발 번역에 대한 권리는 주장할 수 있기만 하다면 나에게 있음. 아, '권리가 생기기만 한다면'이 적절한 전제이려나.) 그 유명한 Pascal의 내기.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Pascal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땐 어떤 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 편파적인 아저씨 같으니라구....! Pascal의 정리가 얼마나 대단한 지는 모르겠지만(알 리가 없지-_-;;) 파스칼의 정리에서는 편파적인 가정 따위, 접어두는 편이 좋을 거다.

#2
은행잎은 끝에서부터 노랗게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지에 달려있는 부분 말고, 둥글둥글한 부분부터.
건물 높은 곳에 거는 현수막은 도대체 어떻게 거는 걸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오늘 처음 현수막 거는 걸 실제로 봤다.
일찍 진 은행잎은 샛노랗지만 생명을 채운 은행잎은 흰색을 많이 섞은 노란색이란 사실을,
그러니까 은행잎이라고 해서 다 같은 노란색은 아니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백양로 삼거리에 서 있는 되게 큰 하얀 나무는 잎도 늦게 나지만 대신 늦게까지 잎을 떨구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소리도 없이 흐르는 개천 위로 무심히 자라난 물풀은 수면을 스치는 바람에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는 대신에 '쏴아' 소나기 소리를 닮은 울음을 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빠른 바람에 환하게 뜬 달 아래로 낮은 구름이 흘러가는 건 썩 멋있는 장면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넋 놓고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걷다가는 버스에 치일 뻔 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하늘 아래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것도, 처음 느끼는 것도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채워온 것보다 앞으로 채워나갈 것이 훨씬 더 많은 21살의 가을.

#3
  세상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것일까? 오늘(아, 벌써 어제네.) 쌍G랑(아, 어감 되게 웃겨ㅋㅋ) R이랑 이대 앞에 있는 밀리오레 비슷한 이름도 모르는 곳으로 놀러갔는데, 세상에, 무슨 옷이 그렇게 비싼 건지. 분명 객관적으로 봤을 때 거기 붙어있는 가격표는 백화점에서 흔히 붙여놓는 가격표보다 숫자가 더 작은데(그리고, 더 적은데) '품질'이라는 가치를 더해서 생각하는 순간 가격표에 적혀있는 숫자의 가치는 그 숫자가 갖는 객관적 가치보다 훨씬 더 큰 상대적 가치를 가져버린다. 그리고 그 '품질'이라는 가치 자체도 나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상대적인 가치이기에 상품이 갖는 경제적 가치는 다시 한 번 상대적이다.

  세상에는 온통 상대적인 것들 투성이인 것만 같다. 언어도, 가치도, 관계도, 사람도. 심지어 '상대적'이라는 것 자체도 상대적인 가치들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세상에 과연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에는, 그러니까 지금보다도 더 젊고 더 어렸을 때에는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보다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는 절대적인 것이 찾고 싶어졌다.(****)

  문득 든 생각인데, 모순적이게도 상대적인 것 자체가 하나의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재밌어보인다. 계속 생각해봐야지.

덧 : 상대성 얘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난건데, 구조주의를 연 레비 스트로스가 어제인가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그렇다고 해서 종교에 귀의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오늘 종교 얘기가 자주 나오네.

#4
  인정한다. 내 개그는 '썰렁 개그'라고 일컬어지는 집단에 속한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되게 웃긴다고 생각하고 한 말에 대해서는 별 반응을 안 보이고 외려 나는 되게 진지하게 한 말에 '웃긴다'는 말을 붙인다. 거 참 이상하기도 하지. 그래도 오늘 내 동생이 한 개그보단 나을 걸 싶다. "그래도 그건 아니얌. 장동건은 만인의 연인. 벤담이랑 밀이 보면 빡친다니깐" 이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개그다.



  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덧글

  • 승민 2009/11/07 00:14 # 삭제 답글

    난 요즘 왠지 저 문귀가 상당히 솔깃한데 "여러분의 삶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내 삶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해버린다면 그에 따른 권리도 포기하는 것이지만 그 의무감, 책임감, 그 짐으 끌고 나아가야만 한다는 고통도 포기하는 거잖아.
    하아... 참 살아지는 건 쉽지만 살아가는 건 쉽지않아..
  • sorstalansag_i 2009/11/07 16:28 #

    정답...! 그래도 난 욕심쟁이 할래. 근데 나 엠티 갔다와서 배탈났더니 내꺼 하기 싫긴 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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