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메모장 대방출 A Délivrer la Pensée

#1
  디스트릭트 9에 관한 감상문을 쓰면서 인간적인 가치에 대해 논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인간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며칠을 고민했고, 주변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도 나누어봤지만 세상에는 '인간적'인 것에 관한 60억개의 명확하지 않은 관념이 있다는 사실만을 알게 되었을 뿐 '인간적'인 것의 정체는 여전히 question mark로 남았다. 결국 의욕에 넘쳐서 글을 시작했던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어중떠중 글을 끝맺었다.

  며칠 전 오리의 글을 봐주면서 GG이랑 솟을샘에 앉아있는데 문득 GG이 얘기했다. 디스트릭트 9에 관한 내 글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던지면서 정작 답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정답. '인간적'인 것에 대한 답은 어렴풋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 때도 알지 못했고 지금도 알지 못하니 내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지껄일 수는 없었다. 근데 GG왈, 디스트릭트 9에 관한 내 글만 읽어봐서는 마치 내가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와 같은 모든 사회적 틀을 거부하는 것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물론 내가 -isme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Rousseau처럼, 혹은 도가의 도학자들처럼 인간의 손으로 일군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인간적인 것을 찾는 극단주의자는 아니다.(-isme encore une fois-_-;;) 내가 선호하건 말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이 이 구조라면 나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종속되기는 거부하면서도 구조 속에 전적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인간적이라는 것은 구조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구조 아래에 위치하는 인간 그 자체의 차원에서 찾고자 하는 어떤 것이 되는 셈이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묻지 마시라. 난 아직 할 수 있는 말이 아무 것도 없다.

  이 모순으로 가득찬 질문에 모순이 아닌 방법으로 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2
  버스를 타고 가다가 헌재의 결정에 반대하며 사퇴를 선언했던 국회의원들이 아직까지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당장 든 생각은 '이 사람들 뭐지?'라는 생각이 아닌, 정치인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가 어떠하건 간에 일단 이들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 혹은 정치적 입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식구들의 삶보다 소중하랴. GG이 내가 생각하는 인간적이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바로 그 날이라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내가 살아가면서 쉬이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하게 될만큼 우선순위에 두게 될 가치는 무엇이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3
  요즘 외솔관 공사가 한창이다. 사실 '한창'이랄 것도 없지만 간혹가다 '수업에 최대한 지장이 가지 않게끔'이라는 안내문의 문구를 무색하게 만드는 소음이 들려오니 감히 '한창'이라고 말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거다. 연구실에 멍하니 앉아있으면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이 생각난다. 탕탕 규칙적으로 내리치는 망치소리가 '닳아지는 살들'을 가득 채운 쇠붙이 소리와 묘하게 겹쳐진다. 꽝 당 꽝 당. 근데 탕탕 규칙적으로 울리는 망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닳아지는 살들'에서 정애와 성식과 영희와 그 늙은 노인이 발작이라도 하듯 미쳐가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4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기억이 있다. 몸의 기억과 머리의 기억. 어느 것이 더 오래 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나는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몸의 기억을 따르는 것 같다. 좋은 걸까..?

#5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시린 겨울, 길을 가득 채운 솔향이 더욱 특별하게만 느껴진다.

#6
  고지서와 광고를 제외하면 온기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텅빈 우체통을 보며 편지를 쓸 때가 되었음을 문득 느낀다. 쓰는 사람의 마음도, 받는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편지를 써야지. 나는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하는데 집배원들이 하는 일이 점점 더 차가워 지는 것만 같아 슬프다.

#7
  수업시간, 꿀롱씨가 만일 삶이 딱 24시간이 남는다면 무엇을 하겠냐고 질문을 던졌다. 당장은 식구들과 친구들, 다른 지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내 전 재산을 동생에게 물려준다는 유서를 쓰겠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이러고 끝내기엔 내 삶이 너무 아쉽다. 만일 영화 <2012>에서처럼 나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 모두가 한꺼번에 죽는다면 실행할 수도 없을 반쪽짜리 계획을 세우기보단 매일매일 매 시간을 삶의 마지막날인 양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8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큰딸, 밖에 비온다." 엄마야, 우산 안 가져왔는데...!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 저 우산 없는데 새천년관으로 데리러 오시면 안되요?" "넌 맨날 아빠한테 데리러 오라고 해서 어쩌니. 도착하면 전화할테니까 건물 안에서 기다려." 싫은 소리를 한 마디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아빠는 어김없이 날 데리러 오셨고 집에 가는 길, 동생을 데리러 명덕 앞으로 갔다. 아, 익숙한 풍경. 발산역 앞을 지나는 순간부터 미친듯이 마음이 편해진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소음, 익숙한 하교 풍경.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들마저 정겹다. 교문 앞에 차를 세우고 동생을 기다리는데 아빠랑 앉아있는 차 안의 시간만 2009년 11월일 뿐, 밖은 영락없는 2005년, 아니, 2006년, 어쩌면 2007년의 어느 날이었다.

  10시 자습이 끝나기 5분 전부터 가방을 챙기기 시작해서 10시 종이 땡 치면 병아리랑, 곰이랑 미친듯이 계단을 내려왔다. 2학년 때까지는 서편현관으로 내려왔지만 3학년 쯤 되면 관록이 붙어서 남자애들이 내려오는 동편계단으로 내려와서 중앙현관으로 슬쩍 빠지는 편이 훨씬 더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크라운베이커리 앞에서 곰이랑 헤어지면 10시 6분 쯤이면 스쿨버스에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스쿨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은 10시 25분. 2000년 묵은 병아리랑 미스터피자 뒤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아이스크림도 징하게 사먹었고, 서로의 스쿨버스로 옮겨가서 끝맺지 못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일찍 출발할라치면 스쿨버스를 같이 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야, 아저씨한테 좀만 기다리시라고 해!" 소리를 지르며 냅다 뛰는 것이었다.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루 종일 같이 있었으면서 할 말은 뭐 그리 또 많았던지.

  3년, 그토록 익숙했던 시간이 지나고 또 다시 2년이 훌쩍 지났다. 영혜도시락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급식실을 지어서 급식을 시작했고,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교복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던 이사장의 철칙에 따라 사복을 입던 아이들은 이제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교복을 입는다.(*) 내가 자주 가던 샤론의 집은 사라지고 벧엘 서점이 반을 줄여서 N분식이 이사를 했고, 가끔, 영혜가 먹기 싫을 때 최고의 메뉴였던 샌드무비는 건물이 헐리면서 가게를 빼게 되었다. 가을이면 노을이 최고로 예뻤던 발산평야에는 새로 조성한 수명산 아파트가 무섭게 들어섰고, 내가 알던 마지막 이름들은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사람은 동생과 동생 친구들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보도 명덕외국어고등학교가 더 '내 학교'같고, 신촌 거리보다는 우장산역에서 발산역까지, 미즈메디 옆을 지나는 그 길이 훨씬 더 정겨운 걸 보면 나의 3년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나보다.

  오늘, 곰을 만났다. 근황을 주고받고 나면 아무래도 자꾸만 옛날 얘기를 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제일 좋은 친구를 만나서도 자꾸만 옛날 일을 이야기하게 되는 까닭은, 아마도 바로 그 곳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시간이 항상 머물던 곳이었으며, 그래서 더 많이 소중했고, 앞으로도 소중할 장소여서 그런 모양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그 곳은 언제나 2005년, 명덕외국어고등학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흐려질까, 외고 폐지론이 무섭다. 병아리의 걱정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 얼마 전에 학교에 외고생들이 떼거지로 출몰한 적이 있었다. 난 정말 우리 학교 교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GG과 박도 보고 식겁했지만, 설마 나만 하려구-_-

#9
  우울과 몽상으로 가득찬 회색 하늘이 싫다. 입고 나간 꽃분홍색 코트가 다 무안할 지경이다. 겨울이 되면서,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온통 무채색으로 칠해진 우중충한 세상에서 나만 불쑥 튀어나온 것 같은 괴리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100m 밖에서도 내 옷만 눈에 들어온다는 GG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덧글

  • 2009/11/23 16: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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