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s와 관계의 확인 Pour Mon Papillon

  예전에 잠깐 '심즈(Sims)'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을 '키운다'기보다는 '관리'하는 게임이었다. 집에 난 불을 끄지 못해서 그 집에 살던 부부를 홀랑 태워버린 후 때려치우고 '심 시티(SimCity)'로 옮겨간 덕에(그나마도─난 나름 합리적으로 도시를 건설하는 시장이라고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때려치웠지만(아빠는 몇 달에 걸쳐 대도시로 키워내시던데...)) 그 게임의 목적이 무엇이고, 결말 부분이 어떤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조종'했던 '심(Sim)'들은 집안에서, 그리고 가상의 도시에서 꾸물렁대고 돌아다니다가 자기들끼리─그러니까 내가 명령을 내리는 심(Sim)'들이 아닌 컴퓨터의 통제를 받는 심(Sim)들과─만나면 멈춰서서 쫑알쫑알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등학교 1학년 때 유럽에 갔다 오다가 두바이에 잠깐 내렸을 때 산 CD라 애들이 영어로 말한다. 아랍어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인해본 적은 없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마치 진짜로 살아있기라도 한 듯 꾸물거리고 돌아다니는 심(Sim)들처럼, 저 사람들에게 묵시적인 명령을 내리며 신(종교적 의미에의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신이라기 보다는 삶을 다스리는 우주적인 집행자로서의 신) 노릇을 하고 있는 나도 어쩌면, 사실은 누군가의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면서 정말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지기도 전에 심(Sim)들이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똑같이 모방하고 있단 사실이 신기해졌다.

  오늘 K양이랑 외솔관에서 공학원 앞까지 내려오는 그 짧은 길에서도 나와 K양은 사람들을─때로는 나만 아는 사람을, 때로는 K양만 아는 사람을, 그리고 때로는 우리 둘 다 아는 사람을─만났고 그때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는 듯이, 그러니까 꼭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함께 멈추어서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말을 몇 마디 나누고, 앎의 표지, 혹은 관계의 표지나 되듯이 서로를 툭툭 건드리고 다시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다. 꼭 '심즈(Sims)'에서처럼.

  세계의 끝에 대해서, 답을 얻지도 못할 질문을 던지고는 끝없이 이어지는 메아리에 귀가 멀어버리고 싶진 않다. 다만,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 그리고 그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넘어 관계와 관계의 유지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보다 본연적이면서도 보다 두루뭉실한 질문을 던져본다. 도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우리는 시간의 틈새에 멈춰서서 나누는 그 멋쩍은 대화로 끊임없이 관계의 단절된 연속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일까? 나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상호대체가 가능한 이 세계에서 1:1로만 설정될 수 있어 보이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인함으로써 나의 존재의 이유를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는 알량한 환상이고, 기대인 것은 아닐까?

- 신촌역에서 신도림역까지, 핸드폰 메모장 다섯 개 분량의 메모


  치과에 들렀다 오는 길, (나 역시 애플의 노예임을 스스로에게 인정하면서) 아이팟으로 노래를 듣는다. 한국과, 미국과, 프랑스의 노래들. 어느 쪽으로건 참 멀리 떨어진 곳들인데도 사랑과 그 사랑에서 파생된 이별을 말하는 세 나라에서 노래는 서로를 참 많이 닮았다.(*1) 이 모든 노래들은 이야기하는 것은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관계였다. 관계─ 한 시간 반 쯤 전에 내가 확인의 비굴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자 했던 것. 하지만 우습게도 노래를 듣다 보니 그 배경에 어떠한 이유가 숨어있건 간에 관계란 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또 어디 있는지도 모를 이유에 매달려 굳이 관계를 확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고보면, 관계를 확인한다는 것은 확인의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퍽 좋은 일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관계에 대해 노래하는데, Pourquoi pas? 일상철학은 좋은 것이다(개인적으로 나는 먼 곳에 있는 앎을 이야기하는 독일 철학보다는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프랑스 철학이 마음에 든다. 이건 내가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기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삶은 일상철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Philosophiquement incorrect.

  요즘, 모든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배알이 뱅뱅 꼬여서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줄 위에 서 있는 듯 위태위태한 기분에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의 줄을 계속 타다가는 그만 두려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그냥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없을 프랑스로 간다는 것은 가끔씩은 커다란 위안이 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가장 근본적으로는 접촉에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의 확인에 지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에 과한 의미를 부여해 무의미성의 꽉 차있는 의미를 못견뎌 했던 것이었다. 바보- 바보- 바보-.

  내일부터는, 무의미성이 주는 의미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 간만에 '심즈(Sims)'나 해볼까?

*1) 사실 얼마 전에 노래들이 하나같이 사랑과 이별을 다루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는데, 그냥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의 논리를 포함하여) 노래로 만들기 가장 좋은 소재가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임의로 내리고 넘어갔더랬다. 어쨌거나 앞면과 뒷면을 모두 가지는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말랑한 감정이기도 하거니와 (그래서) 근거 없는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도 퍽 훌륭한 보편성마저 획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과 시선, 꿈에 대해서는 그토록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독 사랑에 대해서는 획일적고 공통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현상은 원인이 되는 것일까, 결과가 되는 것일까?


덧 : 갈수록 횡설수설이 심해진다. 아까도 K양이랑 얘기했지만, 확실히 사람은 자기가 공부하는 분야의 성격을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나는 프랑스문학을 공부하는 탓에 말이 점점 더 길어지는데, 거기에 사학까지 더하니 그대로 횡설수설이 되어버린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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