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France, 22일째 ├ S1. 2010-2011

25/08/2010, +22. 잠깐 비가 왔고 잠깐 맑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흐려서 돌아다니기에 좋았음.


  사람은 보통 아프면 늦게 일어나게 되는데, 룸메 언니는 정말로 신기하게도 아프니까 일찍 일어난다. 덕분에 나도 본의아니게 기상시간이 일러진다. 약속은 늦은 시간이라 아침에 한껏 여유를 부린다. 아침을 하도 오랫동안 먹었더니 룸메 언니의 한마디 '정말 끊임없이 먹는다'. 맞는 말씀. 하지만 난 음식은 천천히 먹는 것이 좋다. Imagine R 신청서를 작성해 290유로만큼의 수표와 함께 봉투에 넣고, 물을 발라 밀봉한다. 미쓰방은 Volvic으로 세수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Odéon에서 S를 만났다. Amien으로 가기 전, 2주간 유럽 여행을 하고 2주간 파리에 머물고 있는 과 친구였다. 타지에서 만나는 과 친구는 각별히 반갑다. 내가 사실 잘 아는 것도 아닌데, 학교 구경을 시켜달래서 무작정 Sciences Po 쪽으로 걸었다. 정말로 쪼꼬만 중앙도서관, 정말로 멀리까지 흩어져있는 건물들. 엊그제 멘토가 얘기해준 것들을 그대로 얘기해주면서도 '우리 학교다'라는 감흥은 전혀 없었다. 아직도 이곳에서 나는 관광객에 불과하다. 딱히 생각해놓은 곳도 없이, 그저 내키는대로 걷다보니 어느새 Passerelle Léopold -Sédar Senghor가 눈 앞에 나타났다. Pop out!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루브르 쪽으로 다리를 건넌다.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국제전화는 비싼데, 오는 전화는 모두 국제전화 뿐이다. 집, 엄마, 아니면 아빠. 컴퓨터가 고장이 나 한동안 네이트온에 들어올 수 없을 거라고 하셨다. 선이 하나 뚝,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임을 안다. S가 왜 BlackBerry를 선택했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간지?!'


  나는 햄버거가 죽어라 싫은데, 프랑스의 맥도널드에는 햄버거와 디저트만 그득하다. 그나마도 종류가 많지 않은 햄버거. 맥도널드식 패스트푸드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무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자리한 가게에는 뜻모를 외국어로 떠드는 사람들만 잔뜩 있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던 한국인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맥너겟이 6조각에 5.8유로라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건 뭐 금으로 치킨너겟을 튀겨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햄버거를 먹고 싶지는 않아 Camille가 데려갔던 crêprie를 찾아가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강을 다시 건너 Saint Germain des Prés까지 왔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네비홍이 아니라 crêprie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골목들. 서유럽의 건물들은 다들 Ctrl+C, Ctrl+V라는 K옹의 말이 이보다 절실할 수는 없다. Descartes 의과대학 앞에 있는 Lina's를 찝적거려보지만 자그마한 샌드위치가 6유로가 넘는 걸 보고 그대로 도망을 나와 다시 Saint Michel로 돌아왔다. 샌드위치가 가장 저렴한 Subway에서 Sub du jour을 하나씩 주문했다. 오늘의 Sub du jour는 Dinde. 양상추 샐러드를 많이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Pont Neuf가 그대로 보이는 센느강변에 앉아 다리를 달랑달랑거리며 샌드위치를 먹는 것은 정말로 근사한 일이다.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은 누군가 흘리고 간 소세지를 좇았고, 살진 비둘기들은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찾아 겁도 없이 강물 바로 옆까지 내려갔다. 늦은 여름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유람선이 지나가 손을 흔들어줬다. 쾌속선이 지나가자 겨울 하늘처럼 무겁게 잔잔하던 센느강에 파도가 일어 발을 번쩍 들어올렸다.


  중세사박물관의 고풍스러운 외벽을 지나 Sorbonne 문 앞으로 해서 Panthéon으로 갔다. 국제학생증이나 학생비자가 있으면 입장이 무료이지만, S가 비자를 가지고 오지 않아 들어가지는 않고 문 밖에서만 구경한다. Notre-Dame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낱 중학생도 할 수 있는 셀로판지 공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은 그 장엄함 때문이듯, 다 비슷비슷한 건물이지만 Panthéon이 그저 그런 오래된 묘지가 아닌 것은 그곳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이 대표하는 역사적 의의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찍어 줄 사람 따위는 필요 없어, 우리끼리 능력있게 셀카를 찍고는 Jardin du Luxembourg 쪽으로 다시 또 슬슬 걸어간다.


  사진을 찍고는 휙, 가벼운 시선으로 훑는 데에서 관광의 목적을 찾는 것은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 번 왔던 곳에서는 얼마든지 성의없는 관광객이 되어 줄 용의가 있다. 익숙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금새 발랄한 기분이 되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다. Jardin du Luxembourg는 구석구석 정말로 깨알같이 예쁜 곳이지만, 사진을 찍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 나온다면 한 10분만으로도 '구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St. Sulpice 교회는 공사중이었다. 유럽은 참으로 신기한 곳이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여름 휴가철에도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만 한다면 이것저것 잴 것 없이 과감히 공사를 단행한다. 그렇지 않아도 자그마한 교회의 절반이 공사중이라, 어차피 1년을 이곳에서 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30일이면 기차를 타고 Amien으로 가야하는 S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교회 앞 분수, 분수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비가 오면 앉은 채로 노란 우산을 펴서 비를 가렸고, 그러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우산을 예쁘게 접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S도 내가 우산을 가지런히 접어둔다는 사실을 반쯤은 재미나게, 반쯤은 신기하게 여겼다.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데, 알고 있는 SNCF boutique가 우리 동네에밖에 없어 Rennes에서 12호선을 타고 Convention까지 왔다. Paris에서 Amien까지는 15유로. Convention역 앞에서 1.5유로에 6개를 주는 복숭아를 사서 3개씩 나눠 가진다. 곧 보기로 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더 커진 발가락의 물집이 자꾸만 달그락거렸다.


  토마토 볶음과 훈제 연어를 더한 양상추 볶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햄구이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다. 감기에 걸려 며칠을 앓던 룸메 언니는 BNP에서 날아온 마이너스통장 벌금 징수 편지에 정신이 좀 드는지 은행에 다녀와서는 김치볶음밥을 해 먹는다고 부산스러웠다. 이틀 후면 이사인데, 화장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걸 트집잡아 보증금을 깎아먹을까 걱정이 되어 흑인 매니저가 퇴근하기를 기다려 가디언에게 전구를 바꿔달라고 했다. 며칠만에 불이 들어온 세면대에서 양치를 했다. 블랙베리 데스크탑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려는데 인터넷창이 65개나 뜨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컴퓨터를 재부팅시켰다. 완전컴맹에 가까운 나에게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가장 훌륭한 해결책은 언제나 재부팅이다. 다시 한 번 응용프로그램을 실행시켜놓고는, 한 쪽 옷장에 쳐박아두었던 이민백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한다. 전기장판을 깔고, 오리털 이불을 받쳐 넣고, 코트를 반듯이 접어 넣고. 3주 전, 가방에서 꺼냈던 순서 그대로 다시 가방 안에 옷가지들을 챙겨 넣는다. 한국에서는 고르고 골라 짐을 싸느라 시간이 퍽 오래 걸렸는데, 여기에서는 가지고 있는 것은 무조건 챙겨 넣으면 되어 금방이다. 원래는 내일, 내일 모레까지 나누어 천천히 싸려고 했는데, 소프트웨어가 설치되는 동안에 짐을 거진 다 싸버렸다. 뭔가, 짐싸기의 달인이나 이사의 달인이 된 기분이었다. 룸메 언니가 어학원에서 하는 텍스트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좀 도와달라고 해서 텍스트도, 문제도 하나하나 해석을 해 줬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매끈한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번역 일은 웬만해선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일찍 자야지, 했는데 시간이 또다시 늦어버렸다. 중간에 인터넷이 끊기는 바람에 쓰던 일기를 몽창 날려버리고 말았다. "Mi chi get ne"라고 문자를 보내긴 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꼭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해탈을 해버렸다. 조급해하지 말기. "Le piéton est le roi"가 프랑스에 와서 배운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면, 조급하게 굴지 않는 것은 두 번째로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느릿느릿한 삶의 속도에는, 분명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잃지 말라는 반성의 시간이 포함되어 있음을 안다. 변화할 것, 하지만 나로 남을 것. 모순되는 두 명제는 위대한 장인의 손끝에서 미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두 조각의 모서리처럼 땡겅땡겅 춤을 춘다.


덧글

  • 2010/08/26 14: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orstalansag_i 2010/08/26 16:50 #

    난 아마 백년 가도 해석셔틀일걸
  • arrogantduck 2010/08/26 23:17 #

    바보같으니
  • sorstalansag_i 2010/08/27 18:55 #

    해석셔틀, 통역셔틀 다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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