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France, 23일째 ├ S1. 2010-2011

26/08/2010, +23. 하루종일 흐리긴 했지만 실제로 비가 왔는지는 모르겠음

  알람을 맞춰놨지만, 알람이 울기 전에 일어났다. 침대가 불편해 오래 잘 수 없어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험한 밤도 이틀만 더 버티면 끝이 나리라. 남은 우유를 톡톡 털었지만 조금 부족했다. 시리얼은 우유에 불어 흐물흐물해졌지만 퍽퍽했다. 마지막 남은 액티비아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하나씩, 하나씩 비어가는 냉장고.

  아침에 짐을 좀 싼다고 꾸물쩍거리다가 10시 반 약속에 늦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핸드폰이 있으니 예전처럼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지는 않는다. BBO랑 네비방도 은행일이 끝나지 않아 조금 늦을 거라고 했다. 역시 프랑스 은행은 거북이보다도 백만배는 느리다. Saint-Lazare 역에 도착했지만, 출구를 잘못 나왔다. 나는 기차역 앞으로 가야하는데, 계단을 올라오자 어딘지 알 수 없는 작은 골목이었다. 길은 양쪽으로 나서 언제나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든다. 오페라가 나타나서야 내가 내켜하던 방향이 잘못된 방향임을 깨달았다. 반대쪽으로 반짝 돌아 뛰다시피 걷는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뛰지만, 모두가 있는대로 여유를 부리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뛰는 것은 굉장히 품위 없어 보인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법을 따르라.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지만 강제적인 법보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지키지 않았을 때 훨씬 더 무안하다.

  SFR 아줌마는 컨텐츠를 다운로드하지만 않으면 인터넷이 무료랬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인터넷이 무제한인데 요금제가 이렇게 쌀 리가 없다. 문자, 인터넷 무제한인 요금제랑 다를 것이 없는데, internet illimité보다 훨씬 싼 요금제도, 통화나 인터넷 잘못 했다가는 200유로 요금 폭탄이 터진다는 Viçoise의 말도 영 마음에 걸린다. 프랑스 야후 지식인에 물어보거나, 이번 달은 핸드폰 요금으로 실험을 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네비방은 드디어 핸드폰을 마련했고, 한국에서 선불SIM을 해 온 BBO는 아예 프랑스 핸드폰으로 갈아탔다. 둘 다 똑같은 Nokia Bar type Black. 숙원 사업 하나가 끝났다. 둘은 ZARA에 옷을 보러 간다고 했지만, 집에 먹어 치워야 할 음식이 잔뜩 있는 나는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바게트를 톱질하듯 썰어 버터를 발라 구워 먹었다. 바삭바삭한 게 꼭 한국에서 먹던 바게트 과자같다. 크림치즈를 올려 먹었다. 크림치즈도 끝! 저녁에 남은 햄을 다져 넣고, 남은 김을 바스라뜨려, 남은 김치를 독독 털어넣고 김치볶음밥을 해 먹을 때까지 내내 글을 썼다. 글은 좀처럼 써지지 않았다. 집에 들어 온 이후로 인터넷이 계속 되지 않아 미치고 팔짝 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나는 참 훌륭한 요리사다.

  핸드폰에서 끝내주게 재밌는 게임을 발견했다. 무작위로 제시된 알파벳을 이용해 단어를 만들어내는 게임이었다. 단어가 길면 길수록 점수를 더 많이 받았고, 특별히 지정한 알파벳을 제한된 시간 내에 포함시켜 단어를 만들면 추가 시간을 받거나 보너스 포인트를 얻는 게임이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 버전이 있는데, 내내 영어로 하다가 프랑스에 도전했지만 레벨 1도 깨지 못했다. 부족한 어휘력. 최고기록 1508점, 9단계. 매 다섯 단계가 한 시즌인데, 죽었다 깨나도 가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룸메 언니가 골치 아플 것 같은 게임인데, 참 지치지도 않고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난 머리 아픈 게임이 좋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인터넷이 되지 않아 지금 맥도날드에 와서 어제 일기를 쓰고 있다. 프랑스에 도착해서 23일동안 맥도날드를 다섯 번 왔는데, 그 중 한 번은 BBO랑 그냥 들어간 거지만 나머지 네 번은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저녁에 이사를 들어가면 이럴 일도 없겠지. 없어질 일이 너무 많아 신난다.

덧글

  • SilverRuin 2010/08/27 23:34 # 답글

    나 교보 다녀옴!!!!
  • sorstalansag_i 2010/08/28 06:49 #

    다녀왔다는 말만 하는 건 나쁜 거야

    난 이사 끝나고 뻗기 일보 직전
    드디어 인터넷이 제대로 된다 >_<
  • SilverRuin 2010/08/28 11:55 #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점 내는 촬영 금지라구 시끄러워서 안들킨다 해도 난 양심 시민이야 ㅋ
  • sorstalansag_i 2010/08/28 15:18 #

    non non non non non 원래 양심은 털 나라고 있는 거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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