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France, 38, 39일째 ├ S1. 2010-2011

10/09/2010, +38, 아침에 보니 비가 온 것 같았지만 오후에는 또 나름 맑았음.

(쓰다 날렸기 때문에 Short Version)
  Biblithèque de François Mitterand, 혹은 Bibliothèque Nationale,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BN이라고 불리는, 미테랑 대통령이 만들었다는 도서관이 그렇게 유명하다길래 파리 반대편에 있어 퍽 멀지만, 그래도 기념삼아 거기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다짐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영 피곤하기도 하고, 또 돈 내고 들어간다는데, 점심 해결이 어려워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Pont de St. Cloud에서 62번 버스를 타면 반대편 종점까지 쭈욱- 가면 된다니 1시쯤 나가면 2시쯤에는 들어갈 수 있겠거니 싶었다.

  밥을 먹는동안 엄마한테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었는데 받지 못했다. 집전화로 전화를 드렸더니 짐이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고 했다. 으잉? 나는 받은 연락이 없는데! 게다가 한국에서 짐을 보낼 때 우체국 직원이 아저씨 이름은 빼도 된다고 해서 내 이름만 적어 보냈다고 하셨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띠용-! 나는 하숙생이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된 우편함이 없는데, 거기다가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아파트에 동, 호수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아파트 한 동에 번지 하나가 부여되고, 그 번지 수에 있는 우편함에 맞는 이름을 찾아 우편물이 도착하는 건데 내 이름이 해당하는 번지 수에 없다면 그 우편물은 당장에 실종 우편물이 되고 만다. 편지는 사실 여기에서 올 편지가 나의 유일한 친구 LCL에서 날아오는 고지서 뿐이니 상관 없지만, 엄마가 부쳐주신 짐은 얘기가 다르다. 도서관이고 뭐고 일단 짐을 찾아오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 짐찾기 삼만리에 나섰다.

  하숙집 아줌마가 혹시 관리인이 짐을 수령했다는 쪽지가 내가 살고 있는 집 우편함이건, 정체불명 우편물을 위한 우편함이건, 하여간 어느 우편함에고 들어있나 확인하러 내려갔다 오셨다. 없음. 주소지가 불명확한 우편물의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우체국에서 보관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으므로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건 길을 줄게 서는 것이 하나의 일상이니, 또 줄을 길게 서서 avis를 못 받았는데 배송번호는 받았다며 혹시 내 짐이 여기 있는지 물었더니 짐이 다시 Chronopost로 돌아갔다며 Chronopost 전화번호를 주며 배송 내역서 한 장을 뽑아줬다. 집까지 돌아오며 최고로 심각하게 종이를 읽어봤는데, 종이에 정말 Chronopost Roissy로 짐이 다시 도착했다고 써 있었다. Roissy면 Charles de Gaulle 공항인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집에 와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사람이 전화를 받지는 않고 ARS만 죽어라 나왔다. 무슨 공사로 인해 연결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기다리세요. 기다리세요. 기다리세요. 또 기다리세요. 나는 전화 한 달에 한 시간 약정인데,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걱정 위에 슬슬 화딱지가 내려앉는다. 결국 아줌마가 집전화로 한참을 붙잡고 계시더니 내 짐이 현재 공항에 있는 Chronopost 대리점?! 뭐 이런 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셨다. 근데 짐이 공항에 있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 섞인 협박도 함께. 공항까지는 RER를 타고 1시간인데, 거기에서 또 Fret라고, 각종 짐을 배달해주는 업체들이 모여있는 물류 창고 지구를 찾아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어쩌지, 어쩌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아저씨께서 차로 같이 가 주시기로 했다. 도로도 공사중이라 한창 막히는 금요일 오후, Charles de Gaulle 공항까지 슝- 근데 문제는 공항에 짐이 없었다는 거다. Chronopost Acueil에 들어갔더니 직원이 여기저기에 전화를 거짓말 안 보태고 10번 쯤 걸어서 10번 다 똑같은 소리를 했다. 'Aceuil의 소니아에요. 짐을 찾고 싶다는 여성 고객이 한 분 계신데 추적해보니 우리가 보관하고 있다고 뜨네요. 근데 짐이 여기 있나 확인 좀 해 주실래요?' 얘넨 뭐니-_- 처음에는 내 짐이 여기 있다고 하더니, 그 다음에는 짐이 여기 없다고 하더니, 결국에는 나를 바꿔서 Leclercq씨라는 사람이 내 짐을 받아서 자기네한테는 짐이 없다는 거였다. 아니, 그럼 내 짐은 도대체 어디 가 있는 거고, 또 Leclercq라는 사람은 또 누구냐고(내가 살고 있는 곳의 거리 이름이 Leclerc인데 이 사람 이름에는 q가 붙었다). 이 사람이 맞는 사람인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짐을 주는 것도 웃기고, 또 짐을 누군가가 수령했다면서 짐이 다시 Chronopost 지점으로 돌아왔다고 서류상에 기재하는 것도 웃겼다. 그러면서 오늘 말고 내일 아침 일찍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면 Monsieur Leclercq라는 사람의 주소를 알려줄테니 전화 해 보라고 했다. 이쯤 되니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아니, 자기가 바로 확인 못 해주나?! 결국 아저씨는 나를 태우고 막히는 공항까지 오시느라 헛수고를 하신 셈이었다. 공항에서 다시 출발하기 전, 아줌마한테 전화를 해서 Leclercq라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짐을 수령했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혹시 건물 gardien이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짐을 받은 건가, 해서 concierge까지 내려갔다 오셨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왔는데, 띠로리-! 건물 관리인이 짐을 받아놓고는 그냥 대책 없이 자기 사무실에 짐을 쌓아놓고 있었던 것....! 아, 정말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짐을 찾긴 찾았지만 가지고는 가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저씨한테 죄송해 죽는 줄 알았다. 엄마가 보내주신 짐을 푸르면서 300000000000배는 더 감개가 무량했다.

  이미 저녁 6시길래 미테랑 도서관은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죽어라 article만 읽었다. 라텍스베개가 완전 사랑스러웠다.

11/09/2010, 39일째, 맑아서 베개를 널어놓고 나감. 아침엔 춥더니 오후에는 더웠음.

  엄마가 보내주신 라텍스 베개 덕분에 잠을 진짜진짜 잘 잤다. 역시, 잠의 생명은 베개이다. 하숙집 사람들은 내가 베개를 받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지만, 이건 정말로 중요한 거다. 끌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니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낮게 누워있는 안정감이 좋다.

  B 오빠랑 I 교수님을 만나기로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났다. 모든 준비를 다 끝내놓은 상태에서 Le Goff의 대담 기록을 읽는다. 나 참, 대학자면 뭐해, 질문의 논점에서 벗어난 대답을 하고 앉아있어 외국인 학생을 헷갈리게 하는데. Nation은 9호선 반대편 종점에 있어 1시간 전에 나갔음에도 역에 내려서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5분쯤 늦고 말았다. B 오빠는 분명 통화할 때 탑이 두 개라고 했는데 왜 내 눈에는 하나밖에 안 보이는 거지, 그 하나뿐인 탑 주변을 맴맴 돌다보니 알고보니 두 개짜리 탑은 저 쪽, 반대편 출구에 있는 거였고. 나 원, 길치는 어디서든 힘들다. 카페에 한 시간 쯤 앉아서 뜨거운 핫초코를 호호 불어 마셨다. 교수님께서 자꾸만 '자네는' '자네는' 하시는 게 재밌었다. 꼭 다시 수업을 듣는 기분...! 그 때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라틴어를 잘못 쓰셨던 걸 내가 지적했던 적이 있었는데, 덕분에(!)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말씀을 하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08학번이고, 3학년 2학기라는 사실을 알고 교수님은 화들짝 놀라셨다. 내가 교수님 수업을 1학년 때 듣고, 지금 2학년일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었는데, 굉장한 동안이라고 해 주셔서 또 그새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고오, 교수님께서 나를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담그시는구나.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음식이 달긴 했지만 맛있었다. 회를 시켜주셨는데, 회를 안 먹는다는 소리를 할 수도 없고, 남길 수도 없어서 회도, 꼬치도 많은 걸 꾸역꾸역 다 먹느라 곤욕을 치뤘다. 교수님께서 앞으로 인생에 도움이 될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같은 과 교수님께서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 와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안심이 되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귀한 오후시간까지 만들어주셔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Orsay 미술관이나 갈까, 하고 학교 근처까지 왔는데 몸이 피곤해 그냥 Opéra에 있는 유니클로에 가서 바지처럼 입을 수 있는 레깅스나 사야지 싶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길에 만난, 꼬맹이가 꼽사리 껴서 나팔 부는 흉내만 내는 거리의 악사들. 정말이지 내가 이래서 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동전을 넣어주고 싶었지만 난 가난한 유학생이니까 몰래 동영상만 찍었다.
  고르는 건 금방이었는데, 입어보는데도 한참, 계산하는데도 한참이다. 프랑스의 탈의실은 진짜 신기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탈의실이 6개 쯤 있는데 사람들이 그 앞에 길게 한 줄로 줄을 선다. 그럼 직원이 무슨 옷을 가지고 왔나 확인을 하고 탈의실 방 번호표를 준다. 그럼 그 안 쪽에 또 직원이 있는데, 이제 직원이 방 번호에 따라 진짜 탈의실로 안내를 해 주는 것이다. 탈의실 입구는 커튼으로 되어있고, 벽은 통거울로 되어있어 거기에서 입어보고 싶은 옷을 한 번에 6개까지 입어볼 수 있다. 그리고 직원을 부르면 직원이 커튼을 열고 옷도 봐 줄 수 있다. 뭐, 다른 건 별다를 것도 없지만 탈의실 번호표를 준다는 사실이 완전 신기했다. 한국에서도 입던 짙은 쥐색 레깅스를 19.9유로나 주고 샀다. 당분간 죽어라 집에서 밥 먹어야지.

  Un temps élastique은 문장이 죽어라 어려웠다. 단어도 어렵고, 문법도 어렵고, 게다가 길기까지 해 한 문장 읽는 것도 고역인데, 맙소사, 17페이지까지 있네^^ 한 문장을 읽으면서 사전을 이렇게 많이 찾아본 것도 참 오래간만이었다. 별로 남지 않았다고 좋아했는데,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요일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또 월요일은 프랑스어 수업이 휴강되는 바람에 12시 15분부터 7시까지 공강이 무려 6시간 45분이니 어쨌건 다 읽어갈 순 있겠지, 나를 위로한다.

  감기기운이 있어 저녁을 먹은 후 아줌마가 대추와 생강을 우려 차를 끓여 주셨다. 으아, 생강을 통으로 넣으셨는지 매운 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감기가 뚝 떨어졌으면, 싶다. 친절한 사람들. 하숙은 진짜 잘 구한 것 같아 다행이다.

  나의 관심은 여전히 사람에 있지 않다.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대화를 하면서 끊기지 않고 화제를 이끌어낼 수 있을텐데, 나의 대화는 뚝뚝 끊어진다. 누가 말을 시키면 말을 잘 하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말을 이어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보같아.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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