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201011182219) A Délivrer la Pensée

한국 시간으로 새벽 6시 24분.
  동생 수능날. 6시 50분에 집에서 나간다길래 좀 전에 전화를 했더니 떨린다면서 목소리에 눈물이 글썽인다. 안봐도 비디오. 언제나처럼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겠지. 시험 잘 보고 오라고 전화 한건데, 아까 낮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씩씩했는데, 칭얼칭얼 우는 소리를 들으니 여기 먼 프랑스에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수능 보는 것도 아닌데, 나 수능날보다도 더 불안불안, 긴장으로 가슴이 통째로 옭죈다. 동생 화이팅, 문자를 보내놓고도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읽어야할 책이 한 권. 1992년, 동생이 태어난 해에 나온 책. 너무 지저분해서 읽고나면 그렇지 않아도 아픈 몸이 더 아파질 것 같은데 '자꾸 눈물나, 끊을게' 하던 동생의 작은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맴돌아 책도 읽히지 않는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7시 49분.
  지금쯤이면 고사실에 들어가서 앉아 있으려나.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명덕여고에 딱 떨어졌다고 했는데, 친구랑 같은 고사실에서 시험을 본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수능을 봤던 자리랑 똑같은 자리던데, 내가 보내 준 초콜렛은 결국 수능날까지 도착하지 않았고, 그럼 뭘 들고 갔으려나, 아직도 달달달달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 별 잡다한 생각만 머리속에 한가득해 정작 해야 할 내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잘 하겠지, 싶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불안한 것은 내가 동생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냥, 내 동생의 소심함을, 그리고 수능 직전의 떨림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8시 40분.
  이제 시작이구나. 언어영역이 8시 40분부터 시작하니까. 언제나 언어영역을 가장 자신 없어 했는데, 시험지를 받아들고 배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시험을 볼 때에도 배가 아프다고 징징댔었는데. 아, 떨려 미치겠네. 아까부터 진도가 하나도 나가지 않고 있다. 분명 펜은 들고 있고, 머리는 움직이고 있는데, 자꾸만 동생 생각이 머리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수능날은 발표 준비를 하기에는 최악이다. 아침에 챙겨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꼭 거울을 보지 않아도 동생 얼굴이 눈 앞에 아른아른.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 00분.
  언어영역 듣기평가가 끝나고 쓰기 문제를 풀고 있겠네. 제발 정상적으로,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해라. 내 동생은 괜히 독창적으로 생각해서 문제.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00분.
  Fin de 언어영역. 잘 봤으려나. 늘 언어가 안 나와서 걱정하더니, 수능은 잘 봤으면 좋을텐데. 아니, 언니는 언어영역 과외를 해서 프랑스로 교환학생 올 비용을 마련했는데, 동생은 왜 맨날 언어가 안 나와서 걱정인거지?! 이제 이 걱정도 이제는 끝.(아, 좀 더 정확하게, 끝이었으면 좋겠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34분.
  여기 시간으로는 새벽 2시 34분, 깊은 새벽. 수리영역을 시작했을 시간인데, 나는 작년에 내 친구가 싸이 다이어리에 하던 짓을 고스란히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후덜덜, 우스워지고. 아, 3년 전에 수능 볼 때에도 이 시간이 그렇게 지옥일 수 없었는데 3년이 지난 올해에도 이 시간은 나에게 지옥과도 같다니, 이렇게 끔찍하기도 참 쉽지 않다. 뭐, 동생은 나보다야 수리를 잘 보겠지. 떨려서 나까지 잠이 안 온다. 물론, 발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푸코가 나를 들었다 놨다, 동생 수능도 나를 들었다 놨다.

한국 시간으로 '벌써' 오후 12시 13분.
  수리영역이 끝났을 시간이란 걸 퍼뜩 알아챈다. 잘 봤겠지?! 이제 점심시간이겠네. 엄마는 오늘 새벽부터 고심고심하며 도시락을 싸셨을테고. 잘 봤으면 좋겠지만 소심한 우리 동생, 또 밥 먹고 체하는 건 아닐까,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진 않을까, 혹시 또 배가 아프다고 하지는 않을까, 나는 괜한 걱정이기를 바라는 걱정만 한 보따리이다. 한 시간 후에 외국어영역 시험을 칠 때 쯤이면 나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뻗어있을 것 같은데, 아, 심난해.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 56분.
  2시간 조금 넘게 자고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동생은 사탐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국사, 한국지리, 근현대사, 윤리. 순서가 어떻게 되더라- 어쨌건 내 동생은 지금도 사탐을 풀고 있을 것이고, 한 시간 쯤 더, 약간의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말로 널널한 프랑스어 시험을 보면서 마지막 숨을 다잡아 쉴 수 있겠지. 두 번째 과목을 보고 있으려나? 아, 사탐의 안 좋은 추억이 몽글몽글. 내 동생은 정작 수능에서 망하는 혹독한 일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점점점점 커진다. 외국어는 잘 봤을테고, 아, 빨리 끝나라.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 19분.
  드디어 끝. 학교여서 오래 통화는 못하고 핸드폰으로 잠깐 통화만 했는데 어줍짢은 국제전화라 목소리가 어떤지 짐작할 수가 없다. 사실 뭐라고 했는지도 잘 못 들었는걸. 이따 집에 일찍 가서 다시 통화해야지.. 어쨌건 끝났다니 다행.

한국 시간으로 저녁 10시 19분.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오고 싶었는데, 친구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늦어버렸다. 학교에서 할 일이 있지만 그게 뭐 대수랴, 궁금하고, 걱정되어 죽겠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생이랑 통화를 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울지 않고, 목소리가 그냥저냥 괜찮아 나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 이젠 끝이다!

덧글

  • 2010/11/18 17: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orstalansag_i 2010/11/18 18:25 #

    진짜 효도한거야, 그건
  • arrogantduck 2010/11/19 13:07 #

    ㅇㅇ 물론 거기 들어가기까지 개고생했지만...

  • 피리새 2010/12/07 12:37 # 답글

    블로그를 잘보았습니다.

    제가 우연히 생강국사를 보게 되었는데,

    책이 너무 좋아서 생강국사, 생강생물 추천합니다^^


    EBS교육방송에서 강의하시는 최태성, 이희명, 김진영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하셔서 만화로 구성한 참고서(자습서, 교과서)입니다.


    생강국사는 만화로 되어 있어서 이해가 쉽고 술술 잘 넘어가네요.

    그런데 인터넷 주문할 때 분명히 생강국사는 3권인데, 1~2권만 팔더라

    고요.


    그래서 회사블로그에 들렀는데 아직 3권이 안 나왔구요,

    매일 하루하루 생강국사 3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너무나 좋습니다. 시험점수를 내면 ‘10점 만점에 10점!’ 이

    에요.

    특히 1권 저자 최태성 선생님도 좋아합니다.

    현재 EBS 교육방송 탐스런 한국근현대사 강의 듣고 있는데, 그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

    최태성 선생님입니다.


    지금 우리 고등학교학생들은 비싼 인강도 듣고 새빠지게 공부하면서 학

    문의 즐거움을 모릅니다.


    물론 저도 안 느끼고 있습니다.

    공부의 즐거움을 열어줄 교재는 ‘생강’입니다.

    싸고! 재밌고! 이해하기 쉽고! 모든게 완벽해요.

    그리고 옛날과 달리 현대인들은 디지털 시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만화 교재가 ‘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책을 써주신 최태성선생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수능 및 내신과 한국사 시헙에 큰 도움을 주는 책으로 추천하고 갑니다.^0^
  • sorstalansag_i 2010/12/07 17:59 #

    광고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목표물을 잘못 설정하셨습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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