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에서 12월 16일로 넘어가는 하루, 아니 이틀을 살면서 ├ S1. 2010-2011

  1526곡이 들어있는 아이팟은 랜덤 재생을 돌리면 1526곡의 노래가 담고 있는 기억 어디로건 갈 수 있다. 5월 쯤에 즐겨 들었던 노래 ─ 외솔관에서 중도 뒤로 이어디는 길에서도, 날마다 지나도 날마다 새로웠던, 학교에서 신촌역으로 가던 길에서도, 가끔씩은 통금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느라 모두 함꼐인 거리를 혼자 걸어야했던 신촌의 어느 골목에서도, 송내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던 동네 앞 골목에서도 이 단순한 노래를 무한정 반복하여 들었었다. 지금도 눈을 감고 기억을 애써 더듬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눈 앞에 그대로,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살아나ㅋ는데 나는 Camille의 집에 가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내가 좋아하는 트람 속 침묵의, 내가 사랑하는 창가 쪽 자리, 그리고 한 달 내내 나의 낯선 삶이 이어졌던 익숙하고 친절한 거리.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던 기숙사의 건물은 이제는 양로원이 되어 내가 머물던 한 달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바뀌어 있었고, 나는 내가 그 한 달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만일 사람의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어떤 특정한 순간이 있다면, 나의 순간은 파리에서 보낸 이 첫 한 달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 가장 외롭고, 가장 심각한, 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자유로운 순간들이었더랬다.

Camille네 집은 내가 전에 살던 Convention 근처.
12호선은 15구 깊숙히 가는 유일한 노선이라 트람을 타는 편이 빠르다.
하지만 우리 집 앞 트람은 3존, 내 Navigo는 2존까지만-
les Moulineaux까지 걸어가는 길.
지금은 양로원이 되어있는, 내가 살던 기숙사 건물,
망한다고 하더니 여전히 Foyer Anne-Marie Veder던데 뭐.

  정말이지, 나는 트람이 새벽 12시 51분까지 다닌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었다 ;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La Défense 방향으로 가는 트람 2호선은 11시 반부터는 매 20분마다 있었다. 내가 12시 11분에 Porte de Versailles에서 출발하는 트람을 타려고 서두른 것도,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12시 7분, 공지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출발한 트람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이 무겁게 젖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한국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같은 노래를 들으며. 2010년 12월 16일 목요일 새벽 12시 12분 경, 트람은 Mairie d'Issy Val de Seine역, 어둠 한 가운데에 멈춰섰다. Mairie d'Issy Val de Seine역에서 내가 내려야 하는 Musée de Sèvre 역까지는 다섯 정거장. 나보다 프랑스어를 명백하게 잘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운전수에게 더 이상 트람이 운행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 물었지만 짜증 섞인 목소리는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니까요, 나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택시를 타시던가, 더 이상 트람 없다니까요.'라는 단편적인 대답만 반복할 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Saint Germain 섬을 끼고 강변으로 걸었다. 겁에 하얗게 질린 시간의 한 가운데서도 옆에 서 있는 섬의 이름이 Saint Germain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여전히 조금 우습다. 내가 걷는 강변에는 다섯 명의 나만이 있었다 - 좀비처럼 길을 걷는 육체적인 나, 내가 절대로 알지 못할 나, 그리고 세 명의 그림자 나. 보통은 가끔씩 세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쉽지 않아 나는 내 발 밑에 들러붙어있는 세 명의 희미한 나를 발견할 때마다 쉽게 놀라곤 한다. 바다가 가까운 센느강가에서, 무서운 시간으로 창백해진 나는 나의 세 개의 그림자가 합쳐져서 두 개가 되고는, 곧 침묵으로 서 있는 건물의 커다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Pont de Billancourt를 건너다가, 이른 저녁보다 더 환한 우리 동네의 하늘 위로도 에펠탑의 불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실 이건 조금 우스운 일이었지만 왜 그랬을까, 이유는 나 조차도 알지 못할걸. Boulevard de Jean Jaurès는 249번지까지 있었다. 249 Boulevard de Jean Jaurès에서 Marsel Sembat까지 쭉 직진, 그리고 왼쪽으로 Avenue du général Leclerc을 타고 다시 쭉 직진 ─ 말은 쉽겠지만 Nyx의 장막 아래를, 저 길을 따라 혼자 걷는 것은, 진심, 두려움 그 자체였다. 엉엉, 정말이지, 프랑스에 도착하고 거의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덜 무섭게 문자 보내줘서 merci 세드릭. 3.6km를, 50분 쯤 걸은 끝에 드디어 내 방. 마카롱을 닮은, 가방에 들어있던 내 하얀색 전자 사전은 이번에는 하얀 얼음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Pont de Billancourt에서 바라 본, 머리 위를 지나도록 광선을 내뿜은 에펠탑 등대.
3.6 km, from 12h 12 to 1h 03

  그리고 오늘.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한 학기동안 이 곳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을 몇 만났다. 레포트 날짜가 앞당겨지는 바람에 길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고, 잠시만 스쳐지나가듯.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크게 지내지 않았는데, 이 곳에 오니 나마저도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포옹을 하고, 포옹을 하고, 또 포옹을 하고. Bisou 인사에는 이제 많이 익숙해졌지만, Joyeux Noël에 덧붙이는 느닷없는 포옹은 아직 좀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러면서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서 사는 거겠지.

덧글

  • 아... 2010/12/17 21:56 # 삭제 답글

    이쁘다..
  • sorstalansag_i 2010/12/18 00:04 #

    ........누구세요...?!;;
  • 2010/12/18 15: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orstalansag_i 2010/12/18 18:41 #

    날씨는 여전히 겁나 추워요ㅠ 어제도 또....! 눈이 무시무시하게 쏟아졌구요.

    아마 새벽 1시에 걸어 들어와서 프랑스어로 쓴 글을 한글로 다시 옮겨놓는 바람에, 피곤함이 두 배가 되어서 그럴 거에요. 아, 진짜, 제가 쓴 글이지만 프랑스어를 한글로 다시 옮기려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ㅠ

    ......마지막까지 달리시네요ㅠ 여기는 워낙 크리스마스를 크게 지내다보니까 vacances de Noël이 무려 시험 전에 있어서 '일단' 발표는 없어요. 하지만 시험 공부....ㅠ 프랑스인 친구한테 노트를 받아만 놓고 손 놓고 마지막 레포트만 쓰고 있어요. Simply님 화이팅...!
  • simply 2010/12/18 22:18 #

    달려야 하는데 저도 그냥 추위에 놀라서 방에서 손만 비비적 거리고 있어요...허허 ;_;
    시험전에 연휴는 잔혹해요. 윽. 시험공부와 즐김을 balancing하셔서 최대한 모두에게 좋은 쪽으로 일이 풀리길...ㅋㅋㅋ sorstalansag_i님도 화이팅이요!!

    아 근데 올해가 가기 전에 알고 싶었어요! 닉네임은 무슨 뜻이에요? 헤헤
  • sorstalansag_i 2010/12/18 22:28 #

    아, 이건 또 새로운 공리주의 :)

    혹시 '운명'이라고, 임레 케르테스가 지은 소설 아세요? 노벨상을 받은 작가인데, 그 소설 원제가 sorstalansag에요 =D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