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산책_서로 다른 날들의 기록 ├ S1. 2010-2011



   Concorde 광장의 거대한 오벨리스크. 아직은 해가 다 지지 않았을 시간, Concorde 광장을 지날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둥을 가득 채운 과거의 문자를 따라 바래지 않은 금색, 혹은 눈시린 마그마 색으로 시간이 흐르는 저녁을 상상하게 된다. 조금은 아이같고, 조금은 환상적이며, 조금은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조금은 현실적인 상상.
   겨울의 Pont des Arts는, 그러니까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신 적당한 침묵이 흠흠, 목을 가다듬는 Pont des Arts는 조용히 잠겨드는 노을을 보기에 좋아 Paris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지만 소풍을 나온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으로 가득한 Pont des Arts는 어딘가 정감이 가지 않아 나는 늘 내가 한때 사랑했던 다리를, 마치 센느강의 끝까지 걸어 갈것만 같은 기세로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걷다 보면 언제나 오르세 앞에 도달하기 전에 보라색과 주황색이 적당히 섞인, 노을색이라고 밖에는 표현될 수 없는 기묘한 색으로 져버리는 하루의 마지막 태양. 센느강을 가로지르는 bateaux mouches를 타고 지나는 관광객들을 만나면 일제히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들이 어딘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진다.
  반짝, 불이 들어온 Pont d'Alexandre. Paris에서 가장 화려한 다리는 Invalides와 Grand Palais를 연결한다. 꼭 달팽이 같다고 나는 이유없이 생각한다. 이 날도 나는 Paris의 저녁을 한참동안 걸었고, 관광객들이 잔뜩인 Pont d'Alexandre 앞에서 집으로 향하는 63번 버스를 탔으며, Trocadéro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버스 노선도를 쳐다보느라 어두워진 후면 매 시각 정시부터 5분동안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지 못한 외국인 관광객 두 명을 만났다.
  에펠탑이 가장 정면에서 보이는 Trocadéro는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쯤. 산책을 나오는 저녁이면 거의 매일 마주침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녀, La Tour Eiffel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말해지기에 더욱 아름다워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징물. 지금은 집에서 나오기만 하면 에펠탑이 보이는데, 에펠탑 뒤로 찾아오는 저녁이 보이지 않을, 돌아갈 서울은 어딘가 모르게 허전할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이 철렁하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도착한 샹젤리제에서, 분홍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던 어느 하루의 산책길. 사람들이, 특히나 관광객들이 많은 큰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마주치는 이런 dynamisme은 큰길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Paris. <냉정과 열정사이>였던가, 멈춰버린 도시의 시간에 반항이라도 하듯, 피렌체에서는 젊은이들이 미친듯한 속도로 자동차를 몬다는 이야기가 작은 글씨로 적혀있던 것은. 피렌체만 하겠냐만서도 Paris 역시 어딘가 모르게 삶이 죽어버린 듯한 도시라(이건 순전히 전세계에서 어느때고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이다) Notre-Dame de Paris 앞에서고 Champs Elysées에서고 젊음을 파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몹시도 특별하게 느껴져야만 한다.
  2시간 가까이 걸은 뒤 Place Vandôme에 걸터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그저 멍하니 앉아있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중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고, 모두 같은 얼굴로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들은 모두 같은 얼굴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심지어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까지) 같은 사진을 간직한 채 같은 얼굴로 다시 버스에 올라 같은 얼굴로 다른 장소로(아마도 Concorde 광장이겠지) 떠나고 나면 버스가 채 떠나기도 전에 여전히 같은 얼굴을 한 중국인들을 태운 다른 버스 한 대가 Place Vandôme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는 똑같은 과정. 나는 나 혼자 혀를 끌끌 차고, 내 뒤를 지나는 프랑스인들은 그런 중국인들을 조롱하듯 비웃지만 정작 비웃음과 소리가 날듯 말듯 가볍게 구르는 혀를 만드는 장본인들은 그 어떠한 사실로부터도 무지한 채 여전히 같은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혀를 차지 않는 나는 음악을 들으며 수천만명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사진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회색으로 가는 줄무늬가 잔뜩 간 마음으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Paris는 1년이 다 되어도 산책을 나올 때마다 새로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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