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 말한다는 것의 의미 Pour Mon Papillon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말로 말을 한다는 것은 세계의 틈을 살짝, 아주 살짝 비틀어 나를 낯설게 하는 일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살에 새겨지지 않은 언어를 가지고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젖히는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나는 나에 대해 낯설어진다.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수동태. 그 검은 움직임에 의해 가로질러진 나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해 냈다는 거울의 방에서 마주친 수많은 나처럼 나의 안에 있지 않고 나의 밖에 있어서, 그래서 크리스테바도, 시오랑도 먼 타국의 언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거울, 거울, 거울, 거울. 그리고 뒤틀리고, 깨어진 거울. 거울의 어느 면이 진짜 세계이고, 어느 면이 앨리스의 세계인지 명확하게, 두 세계 사이의 균열이 온통 뒤흔들리고 결국은 영영 이별하도록 선명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일종의, 애초부터 '아무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음'을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는 질문인 것이다. 

  오늘 아침, 공용샤워실 문제 때문에 기숙사 관리인이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프랑스어로 말을 하는 나의 목소리가 그렇게 낯설 수 없었다. 한국어로 말하는 나와 프랑스어로 말하는 나와 영어로 말하는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균열은 관념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물리적이다. 나'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에 귀을 기울여보면 알 수 있다. 마치 돌멩이를 던져 그 흔들리는 메아리로 심연의 깊이를 측정하듯 나는 거울에 비친 엇비슷한 나들 사이의 단단한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말을 던진다.

  또다시 부슬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의 아침, 나는 이제야 비로소 노바리나를 조금,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고, 전자제품 코너에 가보면 성능을 자랑하는 에어컨 앞에 매달려 허우적거리는 촌스런 색깔의 비닐끈마냥 매가리없이 흐느적거리는 생각들을 또 굳이 줄글로 붙잡아 고정시키며 걷는 그 5km의 선 위에선 어느 점에서인가 뎅그렁뎅그렁 성당 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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